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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피니언: 범피디의 오피니언 리뷰/인문학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제국주의는 자유주의가 필요했다."

by 범피디 2019.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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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스튜어트 밀은 1806년 당대 저명한 공리주의 학자였던 제임스 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벤담식 공리주의에 반발하면서 질적 공리주의의 깃발을 들었다. 특히 자유주의가 사회의 주도적 이념이 되는 데 큰 기여를 한 책이 <자유론>이었다. <자유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밀은 <자유론>의 첫 장에서 책의 목적에 대해서 쓰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사회가 개인을 상대로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성질과 그 한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밀의 문제의식은 사회의 압력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권력을 행사하는 '인민'은 그 권력이 행사되는 대상과 늘 같은 것은 아니다. '자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각자가 자기 이외 나머지 사람들의 지배를 받는 정치체제가 되고 있다." 밀은 사적 영역에 대한 공적 권력의 개입과 변덕스러운 대중여론에 의해 개인적 삶과 생각이 심각하게 위축되는 시대라고 자신의 시대를 진단했다. 당시를 바라보는 일반적 관점과 많이 다르다. 

   밀이 불안하게 본 이 시대는 어떤 시대였을까? 도시 빈민, 노동자, 농민들이 봉기하였던 1848년의 혁명이 자본가들이 지배하는 정부 군대의 진압으로 실패한 이후 유럽에서 반동의 바람이 불어 자유주의가 크게 위축되는 것을 보고 자유주의를 옹호하기 위해서였다. 맞지만 부족한 설명이다. 정확하게는 급진화된 하층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여론의 압력으로부터 천재적 지성의 개별성을 보호하는 것 역시 또 다른 목적이었다.  

   여론과 대중의 변덕에 따라 국가정책이 휘둘리고 개인의 창의적 발상은 위축되는 시대에 돌입했다고 밀은 보았다. 하층의 급진화와 상층의 반동화가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개인을 위축시켰다. 토크빌이 대중민주주의의 약점으로 다수의 폭정, 다수의 횡포(Tyranny of majority)를 이야기했듯이 밀 역시 속류화되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유사한 위기감을 가졌던 것이다.

   밀은 개인의 사적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유의 원칙'을 제시한다. "인간 사회에서 누구든-개인이든 집단이든-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사자의 의지에 반해 권력이 사용되는 것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유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의 행사도 정당화할 수 없다." 자유주의자에게 철칙으로 여겨지는 '자유의 원칙'(또는 '위해의 원칙')이다. 

   밀은 "나는 효용이 모든 윤리적 문제의 궁극적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밀이 자유를 특히 사상의 자유를 옹호한 것은 가난하고 힘없는 한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 겨냥한 자유의 수혜자는 여론과 맞설 수 있는 지적 개별성을 확보한 탁월한 인물들의 자유를 의미한다. 밀은 대중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 배운 사람이 더 많은 투표수를 갖는 차등 투표제를 주장한 특이한 인물이다.  

   밀은 대중의 동조 현상을 정확히 짚어낸다. "보통 사람의 경우, 다른 사람들의 그런 선호가 도덕과 기호 또는 예의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세우는 데 강력한 그리고 거의 유일한 근거가 된다.밀은 도덕 역시 마찬가지라고 비판한다. "어떤 한 계급이 떠오르는 곳에서는 어디든 그 계급의 이익과 계급적 우월의식이 그 사회의 도덕률을 크게 좌우한다.

   "아직 다른 사람들의 보호를 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외부의 위험 못지않게 자신의 행동에 따른 결과로부터도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같은 이유로 미개 사회에 사는 사람들도 이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그런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 미성년자인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밀의 시대에는 지식인조차 제국주의적인 마인드로 무장해 있던 시대였으니 그럴만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밀은 왜 이토록 영국 제국주의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것일까? 자유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자유주의가 비서구 타자를 향한 비자유주의적 폭력으로 발현된 것은 우연한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로크는 인간이 자유를 향유하기 위해서 먼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 밀은 자유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대상에서 미성년과 미개인을 배제한다. 문제는 누가 미개인인지 결정할 권한이 순전히 밀과 같은 제국주의에 부역하는 지식인에게 있다는 점이다.  

   "결국 문제의 근본 원인은 자유주의가 자기 자신의 보편타당성에 대한 강한 신념에 바탕을 둔 이념이나 사상이라는 사실 자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략) (자유주의는) 다른 사회, 다른 문화의 내재적인 가치를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이들을 '비정상'으로, 아직 '미성숙'의 상태에 처해있는 것으로 낙인찍으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자유주의'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사상이 사실은 타자에 대한 강고한 폭력성에 기반하고 있다. 자유주의는 서구문화 내부에서는 관용과 포용으로 작동하고 비서구에 대해서는 배제와 폭력을 행사한다.

   피식민지에서의 엘리트들이 식민모국이 주입하는 이데올로기에 노출되면서 이들은 협력자가 되어간다. 식민지배가 사실은 현지 엘리트와의 협력의 산물이라는 주장으로 식민모국의 잔인성은 은근슬쩍 넘어가 버린다.

   당연히 자유주의는 제국주의가 아니다. 그러나 제국주의가 자유주의라는 외피를 필요로 했음도 분명하다. 또한 밀의 자유주의가 가장 탄탄한 외피의 하나였음도 분명하다. 밀은 '빼박'(빼도 박도 못 하는) 친(親) 제국주의자이다. 

   자유주의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국시(國是)였던 한국에서 진보의 최대치였다. 반공 앞에서 자유주의는 당당하고 빛났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주의가 어떤 지층 위에 구축되어 있는지 정확히 보지 못했다. 밀의 자유주의는 처음부터 비서구를 철저히 배제한 채 성립된 사상체계다. 밀의 <자유론>에서 보이는 이러한 심각한 결손은 우리가 자유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지 말아야 할 합당한 근거가 된다. 자유는 소중하다. 그러나 자유의 소중함이 자유주의의 정당성으로 치환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제국주의는 작동하기 시작한다.

 

※ 프레시안에 실린 "'자유론'은 왜 식민 지배를 긍정했을까?" ([인문견문록]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요약, 발췌, 재구성하였습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34487#09T0

 

'자유론'은 왜 식민 지배를 긍정했을까?

이라크 전쟁의 한 장면을 생생히 기억한다. 미군 탱크가 이라크 어느 도시의 시가지로 진입하고 있었다. 탱크가 시내 중심가에 접근하려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백인 여성이 탱크를 막아섰다. 여성은 반전(反戰) 구호를 외쳤다.

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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